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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한국사/한국사 사료

공무원 한국사 사료집 " 후삼국의 성립" 핵심 [공무원 한국사, 수능 한국사, 한국사검정시험 1급, 2급, 3급, 4급, 5급, 6급, 한능검]

by 성공멘탈충전소 2022.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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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삼국의 성립

 

후백제 성립

- 견훤은 상주 가은현 사람이다. 군대를 따라 서울에 들어왔다가 그 공로로 비장(裨將)이 되었다. 당 경복(景福) 원년은 진성왕(眞聖) 6년인데, 아첨하는 소인들이 왕의 곁을 둘러싸고 정권을 농락하니, 기강은 문란해지고 흉년마저 겹쳐 백성들은 유리되고 도적들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났다. 이에 견훤은 은근히 반란할 뜻을 품고 무리를 모아 서울 서남의 주현을 공격하니, 가는 곳마다 호응하여 불과 한 달 동안에 군사가 5,000여 명에 이르렀다. 드디어 무진주(武珍州)를 습격하고 자칭 왕이라 하였으나 감히 공공연히 왕이라고는 못하였다. 견훤이 서쪽으로 순행하여 완산주에 이르니 그 백성이 환영하고 위로하였다. 견훤이 인심을 얻은 것을 기뻐하며 드디어 후백제 왕을 자칭하고 관직을 마련하였으니, 효공왕 4(900)이었다.

 

후고구려 성립

- 궁예는 신라 사람으로, 성은 김씨이고, 아버지는 제 47대 헌안왕 의정이며, 어머니는 헌안왕의 후궁이었다.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어 스스로 선종(善宗)이란 이름 하였다. 신라 말에 정치가 잘못되고 백성이 흩어져 지방의 주현들이 반란 세력에 따라 붙는 자가 거의 반에 이르고 먼 곳과 가까운 곳에서 도적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그 아래에 백성이 개미처럼 모여드는 것을 보고 죽주의 도적 괴수 기훤에게 의탁하였다. 기훤이 얕보고 거만하게 대하자, 경복 원년 임자년(892)에 북원의 도적 양길에게 의탁하니, 양길이 잘 대우하여 일을 맡기고 드디어 병사를 나누어 주어 동쪽으로 땅을 점령하도록 하였다.

- 천복 원년(901)에 선종은 스스로 왕이라 칭하고 나라를 세워 국호를 마진이라 하고 연호를 무태라 하였다.

 

고려의 건국

- 여러 장수들이 (왕건에게) 말하기를 지금 정치가 어지럽고 나라가 위태로워 백성들이 모두 자기 임금을 원수와 같이 싫어하는데, 오늘날 덕망이 공(왕권)보다 훌륭한 사람이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여러 장수들이 태조를 호위하고 대문으로 나가면서 왕공이 이미 정의의 깃발을 들었다.”라고 앞에서 외치게 하였다. 이에 앞뒤로 달려와서 따르는 자의 수가 얼마인지 알 수 없었으며, (궁예)이 이 말을 듣고 어찌할 줄 모르다가 미천한 차림으로 산의 숲 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얼마 안가서 부양 주민들에게 살해되었다.

 

신라의 항복

- 9(935) 임금(경순왕)은 사방의 토지가 모두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되어, 나라의 세력이 약해지고 고립되어서 스스로 안전을 지킬 수 없겠다고 여겼다. 이에 여러 신하들과 함께 고려 태조에게 항복할 것을 의논하였다. 태조에게 항복을 청하게 하였다. (고려) 태조가 교외에 나와서 궁궐 동쪽의 제일 좋은 구역을 주고 큰딸 낙랑공주(樂浪公主)를 아내로 삼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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