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신라 하대의 반란
귀족 세력의 왕권 다툼
- 혜공왕 ( 96각간의 난 ) : 대공 각간의 무리가 일어나자 왕도 및 5도, 주·군의 도합 96각간들이 서로 싸우게 되어 크게 어지러워졌다.
- 헌덕왕 ( 김헌창의 난 ) : 웅천주 도독 현창은 그 아비 주원이 앞서 왕위에 오르지 못한 것을 이유로 반간을 일으켰다.
- 문성왕 ( 장보고의 난 ) : 청해진 대사 궁복이 자기 딸을 왕비로 맞지 않는 것을 원망하여 청해진을 근거로 반란을 일으켰다.
6두품 세력의 반신라화
- 첫째, 지금 나라에서는 골품 제도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6두품 이하의 귀족들은 1관등까지 오르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오직 진골만이 올라갈 수 있습니다. …이웃나라는 과거 제도를 시행하여 인재를 등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과거 제도를 시행함이 타당합니다. 둘째, 지금 나라 안에는 각지에서 지방 세력이 자립하여 왕실의 권위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또한, 상주 지역에서는 원종 등이 반란을 일으켜 왕실의 안위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 설계두는 신라 사대부 집 자손이다. 친구와 함께 술을 마시며 말하기를, “신라에서는 사람을 쓰는 데 먼저 골품을 따지므로 정말 그 족속이 아니면 비록 큰 재주와 뛰어난 공이 있더라도 그 한계를 넘지 못한다. 내가 원하는 바는 멀리 중국에 가서 세상에 없는 지략을 발휘하고 비상한 공을 세워 스스로 영화의 길을 열었으면 족하겠다.” 하고 무덕 4년 배를 타고 당으로 갔다.
농민봉기
- 진성왕 3년 나라 안의 여러 주·군에서 공부(貢賦)를 바치지 않으니 창고가 비어버리고 나라의 쓰임이 궁핍해졌다. 왕이 사신을 보내어 독촉하였지만, 이로 말미암아 곳곳에서 도적이 벌떼같이 일어났다. 이에 원종·애노 등이 사벌주(상주)에 의거하여 반란을 일으키니 왕이 나마 벼슬의 영기에게 명하게 잡게 하였다. 영기가 적진을 쳐다보고는 두려워하여 나아가지 못하였다.
- 도적들이 나라의 서남쪽에서 일어났는데, 바지를 붉게 하여 표식을 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적고적(赤袴賊, 붉은 바지를 입은 도적)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주와 현을 도륙하고 서울의 서부 모량리까지 와서 사람들을 위협하고 노략질하고 돌아갔다.
정치적 해이와 사회 혼란
- 당나라 19대 황제가 중흥을 이룰 때, 전쟁과 흉년 두 가지 재양이 서쪽(당)에서 멈추어 동쪽(신라)으로 왔다. 어디고 이보다 더 나쁜 것이 없었고, 굶어 죽고 싸우다 죽은 시체가 들판에 즐비하였다.
- 왕은 아첨하는 소인들을 항상 옆에 두고 남몰래 희롱하며 정사를 돌보지 않으므로 기강이 문란해졌고, 또한 기근이 심하여 백성들은 사방으로 유리하고 도적이 벌떼처럼 일어나서 국내가 어지럽게 되자, 견훤은 몰래 딴마음을 먹고 많은 사람을 불러 모아가지고 서남쪽 주현의 적도들을 토벌하니, 가는 곳마다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 호응하여 한 달 사이에 5천 명의 무리가 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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