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기
빗살무늬 토기는 팽이처럼 밑이 뾰족하거나 둥글고, 표면에 빗살처럼 생긴 무늬가 새겨져있다. 곡식을 담는 데 많이 이용된 이 토기는 전국 각지에서 출토되고 있는데, 대표적 유적지는 서울 암사동, 봉산 지탑리 등이다.
신석기에는 인류가 농경과 목축을 시작하여 스스로 식량을 생산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한반도 일대에 살았던 신석기 사람들은 주로 강가나 바닷가에 움집을 짓고 마을을 이루었으며, 부족사회를 형성해 갔다.
해안이나 강가에 움집을 짓고 정착 생활을 하게 되었다. 바닥은 원형이나 모서리가 둥근 방형으로 중앙에는 불씨를 보관하거나 취사와 난방을 위한 화덕이 위치하였다. 집터의 규모는 4 ~ 5명 정도의 한 가족이 살기에 알맞은 크기였다.
태양, 물 등의 자연물이나 자연 현상에 정령이 있다고 믿었다. 특정 동식물을 부족의 수호신으로 섬겼으며, 무당과 그 주술을 믿었다. 사람은 죽어도 영혼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영혼과 조상을 숭배하였다.
청동기
청동기 시기에는 반달 돌칼 등 다양한 간석기가 사용되었고 민무늬토기를 비롯한 토기의 종류도 다양해졌으며 고인돌과 돌널무덤이 만들어졌다.
경제력이나 정치권력이 우세한 부족들은 스스로 하늘의 자손이라고 믿는 선민사상을 가지고, 주변의 보다 약한 부족을 통합하거나 정복하고 공납을 요구하였다.
집터의 형태는 대채로 직사각형이며, 움집은 점차 지상 가옥으로 바뀌어 갔다. 움집 중앙에 있는 화덕은 한쪽 벽으로 옮겨지고, 저장 구덩도 따로 설치하거나 한쪽 벽면을 밖으로 돌출시켜 만들었다. 창고와 같은 독립된 저장시설을 집 밖에 따로 만들기도 하였고, 움집을 세우는 데에 주춧돌을 이용하기도 하였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