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의 정치 - 고구려
제가회의 : 감옥이 없고, 범죄자가 있으면 제가들이 모여서 논의하여 사형에 처하고 처자는 몰수하여 노비로 삼는다.
태조왕
요동 지역으로 진출을 도모하고, 동옥저를 복속 하였다.
고국천왕
왕위가 처음으로 형제상속에서 부자 상속으로 바뀌었다.
순노부, 소노부 등 5부를 행정 단위 성격의 부로 개편하였다.
고국천왕은 한미한 신분의 을파소를 국상으로 등용하여 소농민을 보호하는 진대법을 실시하였다.
미천왕
낙랑군을 처지하여 한반도로 진출하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소수림왕
왕 재위 2년에 전진 국왕 부견이 사신과 승려 순도를 보내며 술상과 경문을 전해왔다. 왕께서 사신을 보내 사례하며 토산물을 보냈다. 왕 재위 5년에 비로소 초문사를 창건하고 순도를 머물게 하였다. 또 이불란사를 창건하고 아도를 머물게 하였다. 이것이 해동 불법의 시작이었다.
전진에서 불교를 받아들였고, 유학 교육 기관으로 태학을 설립하였으며, 율령을 공포하였다.
광개토대왕
영락 6년 병신에 왕이 직접 수군을 이끌고 백제를 토벌하였다. 백제왕이 우리 왕에게 항복하면서 “ 지금 이후로는 영원히 노객이 되겠습니다. ”라고 맹세하였다.
왕 보병과 기병 5만 명을 보내 신라를 구원하게 하였다. 고구려군이 남거성을 통해 신라성에 이르렀는데 그곳에 왜가 가득하였다. 관군이 도착하자 왜적이 퇴각하였다.
1부 : 고루려 건국자인 주몽의 신이한 충생담과 건국담, 대무신왕으로부터 광개토대왕까지의 세계와 약력 및 비의 건립 경위가 기록되어 있다.
2부 : 광개토대왕 재위 시의 영토 확장 사업의 주요 내용이 연도별로 새겨져 있으며, 국경지대의 통치권 확인과 왕도 정치를 구현하고자 한 내용이 서술되어 있다.
3부 : 광개토대왕의 무덤을 수호, 관리하는 묘지기 330호의 출신 지역 이름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다.
장수왕
수도를 평양으로 옮기고, 백제의 수도 한성을 공격하여 개로왕을 죽였다.
( 중원고구려비 )
고구려의 군대가 신라 영토에 주둔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록
고구려가 신라의 왕을 호칭할 때 ‘ 동이 매금 ’ 이라고 부르고 있다.
고구려가 신라의 왕과 신하들에게 의복을 하사하는 의식을 거행한 것으로 보인다.
영양왕
태학박사 이문진에게 명하여 고사를 축약하여 ‘신집’ 5권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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