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정치 - 신라
화백회의 : 큰일이 있을 때는 반드시 중의를 따른다. 이를 화백회의라 부른다. 한 사람이라도 반대하면 통과하지 못하였다.
지증왕
왕 재위 3년 순장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렸다. 3월에는 주와 군의 수령에게 명하여 농사를 권장케 하였다. 처음으로 소를 부려서 논밭을 갈았다.
국호를 신라로 바꾸고, 왕의 칭호도 마립간에서 왕으로 고쳤다. 대외적으로는 우산국을 복속시켰다.
왕 13년 여름 6월 우산국이 항복하여 매년 토산물을 공물로 바치기로 하였다. 우산국은 명주의 정동쪽 바다에 있는 섬인데, 울릉도라고도 한다. 그 섬은 사방 일백 리인데, 그들은 지세가 험한 것을 믿고 항복하지 않았다. 이찬 이사부가 우산국의 해안에 도착하였다.
그는 거짓말로 “ 너희들이 만약 항복하지 않는다면 이 맹수를 풀어 너희들을 밟아 죽이도록 하겠다.”라고 말하였다. 우산국의 백성들이 두려워하여 곧 항복하였다.
법흥왕
금관국주 김구해가, 나라 창고의 보물을 가지고 투항하니 왕이 그를 예로 대우하여 상등의 위를 주고 본국을 식읍으로 삼게 했다.
왕은 병부를 설치하여 직접 병권을 장악하였고, 건원이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다. 또한 영토 확장에 힘을 기울여 금관가야를 정복하였다.
왕 7년에 율령을 반포하고, 처음으로 백관의 공복을 제정하였.
진흥왕
한강 유역을 빼앗고, 고령 지역을 대가야를 정복하였다. 북쪽으로는 함경도 지역까지 진출하였다.
선덕여왕( 덕만, 인평 )
왕이 죽기 전에 여러 신하들이 왕에게 아뢰었다. “ 어떻게 해서 모란꽃에 향기가 없고, 개구리 우는 것으로 변이 있다는 것을 아셧습니까. ” 왕이 대답했다. “ 꽃이 그렸는데 나비가 없으므로 그 향기가 없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이것은 당나라 임금이 나에게 짝이 없는 것을 희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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