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 통일 과정
여. 수 전쟁 ( 고구려 vs 수나라 )
살수 대첩
을지문덕은 평양으로 집접 쳐들어오려는 수의 30만 대군을 청천강 부근에서 궤멸시키며 대승을 거두었다.
을지문덕이 장수 우중문에게 보낸 시이다. ” 신비로운 계책은 하늘의 이치를 헤아리고 / 기묘한 꾀는 땅의 이치를 꿰뚫는구나. / 싸움에서 이긴 공이 이미 높으니 / 족한 줄 알고 그만하기를 바라노라. “
여. 당 전쟁 ( 고구려 vs 당나라 )
고구려는 요동에 천리 장성을 축조하고 당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당 태종은 직접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여 공격해 왔지만, 고구려는 안시성 전투에서 당 군을 격파하였다.
삼국 통일 과정
백제 멸망
김유신 등이 황산 들판으로 진군하였다. 백제 장군 계백이 병사를 거느리고 와서 먼저 험한 곳을 차지하여 세 군데에 진을 치고 기다렸다. 유신 등이 병사를 세 길로 나누어 네 번 싸웠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장수와 병졸들의 힘이 다하자, 장군 흠순이 아들 반굴에게 말하였다. ” 신하에게는 충성만 한 것이 없고, 자식에게는 효도만 한 것이 없다. 이렇게 위급할 때 목숨을 바친다면 충과 효 두 가지를 다하게 된다.” 발굴이 “ 명을 받들겠습니다. ”하고 곧장 적진에 뛰어들어 힘을 다해 싸우다 죽었다.
고구려 멸망
고구려는 연이은 전쟁으로 국력을 많이 소모했을 뿐만 아니라 연개소문이 사망한 후 지배층 내부에서 권력 다툼이 일어났다. 나. 당 연합군은 이 기회를 이용하여 평양성을 함락하고 고구려를 멸망 시켰다.
나당 전쟁
신라는 사비성을 탈환하고 웅진도독부를 대신하여 소부리주를 설치하였다.
당의 이근행이 군사 20만 명을 거르리고 매소성에 주둔하였다. 우리 군사가 이를 쳐서 쫓아 버리고 군마 3만여 필과 병장기를 노획하였다.
사찬 시득이 수군을 거느리고 소부리주 기벌포에서 당의 설인귀와 스물 두 번의 크고 작은 전투를 벌여 이기고 4천여 명의 목을 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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